제   목 : 외가집을 다녀온것같은 한성연수원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2006년04월27일17:13:46

조회수 :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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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길은 아니였고 지난 겨울(금년 1월)에 친구와 함깨 다녀오면서 여름에오면 참좋겠다는 기대감을 저버릴수가 없어 멀리 부산에서 평소 존경하는분들에게 경북 문경에 몆일을 푸근하게 쉴수있는 곳이 있다고
설명했더니 쾌히 승낙을 하여 6명이서 출발을 하게 되엇다
떠날때는 등산을 준비하고 구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처 서안동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정심을먹고
문경 한성 연수원에 도착하니 4시경이 되엇다 마성을 미처못가 진남교 다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가은방면으로 10여키로를 가니 그옛날 산업사회 기초 원자재로 유용하게 쓰였던 석탄을 운반하던 기차 철교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믿으로 흐르는 강물은 그시절 검의틱틱한 강물과는 대조적으로 맑은 물이 제법 흐르고
그옛날 탄광촌의 부유함이 상실된 페광촌을 환상하둣이 기차가 철교위로 달리던 흔적은 간곳없고 철교에서 흘러내린 녹물은 이를 방증해 주는둣햇다 철교를 바라보면서 내리막을 내려 커브를 돌면서 보이는
조그만한 다리를 지나 우측으로 컥으면 저안에 조그만한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옆으로는 맑은물이 흐르고 도로를 따라 드러가면 양쪽으로는 산이 동네를 어려운 재난시에 절대 보호를
해줄수 잇드시 평풍을 치고 의엿하게 버티고 있고 정면으로 멀리보이는 산들은 동양화 한폭을 보는 느낌으로 먼 옛날에는 효부 효자가 충절로 부모를 극진히 모시면서 이곳을 지키고 살앗는같은 아늑하고 고요한 동네 가운데를 지나면 조그만한 시골초등학교 답잔케 교문입구에는 38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돌이
편하게 누워 자리잡고 그옆면에 한성연수원이라고 세겨진 문폐가 찿아오는 이들을 안으로 안내를 한다.
이학교가 먼 옛날에는 기초교육의 시발지이고 가을에는 망국기를 휘날리며 온동네 축제의 요람이기도
했던 이곳이 국가 교육정책 실폐로 젊은 사람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나니 학생이 없어 폐교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수원 안으로 들어서니 말끔히 단장이되어 잘정돈된 나무들 나무그늘밑에 자리한 들마루와 비싸게 구입했겠다싶은 아름돌이 수석들 그리넓지는 않아도 잔디로 조성된 운동장 시골에서는 극히 보기드문 콜푸
연습장 들이 찿는이들 마음을 순간적으로 편안하게 해준다
50대 중반의 부부가 경상도 싸투리로 "잘 오셧니더" 라고 반갑게 맞이한다  구수한 사투리로 찿는이들을
푸근하게 해주니 순간 친척집이나 외가댁을 찿은 느낌으로 착각하게 될정도로 분위기가 바뀐다
여장을 풀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보니 구석구석 섬세한 손길이 미치지않는 곳이없을 정도로 찿는이를
감탄케 한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담배재라도 털기가 민망할 정도로 깨끗하여 제털이가
어디있느냐고 물엇더니 아무대나 버리라고 한다, 버리지말라고 하는말보다도 더무섭다 그래서 있는
동안 쓰레기 담배꽁초는 마련된 도가지에 안버릴수가 없었다.
잠시후에는  멀리 오신다고 피로하셨으니 이층에 다(茶)도실로 오라고 하여 일행이 모두 갓더니 그날
마침 대구에 거주하고 게시는 사장부인이 다니러 와서 저희들에게 찿아주니 고맙다는 인사로 茶를 대접
하겟다는 것이었다  미안해서 몸둘바를 몰랏다 녹차 국화차 말차 등등으로 심신을 달레면서 茶道에
대하여도 한참 이야기를 듣고 제일 기억에 지워 버릴수가 없는것이 茶맛이 텁텁하다라는 표현은 茶가
짭다라고 표현하여야 한다라고 기억한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분이 풍기는 것은 온화 하면서 차별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스타일로  항상 남에게 베풀고 봉사하는 여성상이 였다.
茶실 분위기는 사대부집 응접실 같앗다 진열된 茶잔과 특히 해나무 탁자는 6명이서 겨우 들수가 있다는
것으로 중량이엿고 나무 자연 무뉘는 다실의 고유함을 더욱 물씬 풍겻다
그리고는 그茶室에는 다시 갈수가 없엇다 그분이 그날 저녘에 대구로 내려가셧기에 .......
이런말을 남기고 싶다   友其正人  我亦自正 (그바른 사람을 벗하면 나또한 저절로 바르게 되느니라)라고

10여명이 잠자리 할수있는 방을 6명이서 넉넉하게 잘수가 잇었다
침구를 펼려고 이불장을 여니 침구에 손대기가 조심스러웠다 워낙 침구가 가지런히 질서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잇어서 내일아침 다시개어 얻드라도 조렇게 할수가 잇을가 하는것이 두려웠다
군대 관물 정돈해 놓은것같앗다 펼때 조심스럽게 펴서 내일아침에 다시 접을수 있도록 눈여겨 보아놓고
다음날 아침에 침구 개어 올려 정돈하는것은 결국 내몫이 되고 말았다
목욕탕도 순간 온수 보일러가 잇어 따둣한 물에 목욕할수가 잇었고 역시 워낙 깨긋하여 목욕하고 난후는
혹시 내가 지저분하게 사용하지는 안햇는지 돌아보게 되고 결국은 물로 청소를 하고 나오게 되엇다

아침식사는 쌀과 찰조로 혼합하여 지은 밥을먹엇는데 반찬은 그옛날 생일날이나 얻어 먹을수가 잇던
소고기국에 촌에서 먹음직한 반찬에 간이 맞으니 맛이 잇을수 밖에 없었다.
평소 아침밥보다 배는 더먹은것 같앗다
식사를 더 권하는 아주머니 눈빛이 과식이 아니고 진솔함이 역역했다
전날 저녘 칼국수를 두그릇 먹엇는데도 먹엇는 기억이 없을정도로 소화기능은 무쇠를 녹일 정도 였다
아침을 먹고 등산을 할려고 나갔다가 산중턱에서 산딸기 밭을 만나 각자 산딸기 따기에 정신을 잃고
등산은 깜박햇다 내려오는데 저수지가 모심기철이 여서 그렇 겟지만 담수량이 절반에도 못믿일정도
였는데 논고동이 주어담기가 바뿔 정도로 많았다 어떤 아낙네는 큰다랑이로 한다랑이나 주엇고
아직 이곳은 자연 생태계가 보존 되는 지역이구나 하는것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좋은곳이다 라는것을
실감케 했다
출발할때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게획잡아 일행각자 개인 사정으로 돌아와야 겟기에 발길을 만부득이
돌려야만 햇지만 추후 다시 그곳을 간다면 일정을 여러날 잡아서 푸근하게 놀다가 왔으면 한다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집사람에게 자랑을 했더니 금방이라도 가고 싶다구 한다

우리들에게 아침저녘을 맛잇게 제공해 주시던 아주머니성씨가 수원백씨라고 했던가?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시고 몸도 날엽하게 오는이들에게 무엇을 무엇으로 맛잇게 해드릴까 늘 걱정만
하시던 구수한 그아주머니가  왠지모르게 갑짝이 왜 이렇게 보고싶어 질까 ????.......
임꺽정 수 제자같이 의리있으신 아저씨와 그부부 늘 건강하시고 다음또 뵙지요 안녕히 계십시요.

부산에서 몇일전에 갓던 김년표가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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