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두어번
세월에 지쳐서 잠든 날이면
같은 꿈을 꾼다.
#1
황티기 넘어 구랑리 시냇가를 돌아서면
착 가라앉은 하내보다 먼저
백화산이 눈에 아픔처럼 파고든다.
#2
샛담과 힌디미를 헤엄하면 산은 오리무중
가도가도 첩첩산중,
어려서는 무서워 못 가본 곳,
오늘도 발길이 모질어서 허방을 짚는다.
#3
삼밭골 맨 끝자락
돌담만이 남은 스르진 집터에
새로 자란 오리나무가
하늘같던 밤나무와 키를 재고,
뒤란 장독대 언저리엔
키보다 높게 자란 명아주들 해를 쿡쿡 찌르고,
꿀벌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심장을 흔들고,
꽃가루와 까끄라기 범벅에 영혼은 따갑고,
도깨비바늘은 발길을 잡고 늘어진다.
#4
미끄럼바위에 누워서
눈을 가만히 뜨면 별은
내 콧잔등에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대기권에 빛이 굴절되어서 반짝거린다
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첫사랑의 순이의 눈망울처럼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5
첫 동차 소리는 자명고처럼
새벽을 찢고 나온다.
지금은 철로자전거만 다니는 가은선
십 년 전부터 간이역이었던 구랑리역이
다시 땅에서 솟고,
그날의 해바라기도 화산처럼 분출한다.
떠나는 날은 햇살이 따가웠다.
침묵의 창너머에 농암천이 반짝거린다.
한 달에 한 두어번
세월에 지쳐서 잠든 날이면
같은 꿈을 꾼다.
